지방분권운동구미본부, 시민광장 분쟁에 대한 입장 발표

김도형 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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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광장  주변 조감도

 

첫째, 구미시는 왕산 선생의 유족들과 광복회에 즉각 대화의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구미시는 임은동 왕산선생기념관의 운영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셋째, 구미시는 왕산선생기념사업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청사진을 수립하여야 한다.

넷째, 구미시는 구미시의회와 함께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시민원탁회의를 소집하라!!

시민원탁회의에는 유족들과 광복회, 지역 보훈단체 대표들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전국= KTN) 김도형 기자= 지방분권운동 구미본부(이하 구미본부)는 왕산 허위선생의 순국 111주년을 맞이해 최근 지역이 논란이 되고 있는 왕산광장 명칭과 관련된 입장을 발표했다. 구미본부는 분쟁 해결을 위한 4가지 방안과 함께 시민원탁회의를 소집해 왕산 유족과 광복회 그리고 지역 보훈단체 대표들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돼야한다고 밝혔다.

 

구미본부는 성명서 발표와 함께 10월에 지역에서 일어난 1927년 10월 11일 신간회 선산지회 창립, 1927년 10월 18일 장진홍(張鎭弘, 1895~1930) 선생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의거 발생, 1946년 10월 5일 신간회의 주역 박상희(朴相熙, 1906~1946) 선생의 10월의 폭풍이 몰아치는 와중에 선산경찰서 인근에서 진압경찰에 의해 피살, 1946년 10월 17일 해평의 운파(雲坡) 최관호(崔觀浩, 1905~1946) 해평 지서에서 재판 없이 처형 등 역사적 사실들을 언급했다.

 

구미본부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으로 이제는 과거의 질곡을 극복해야 한다며 "근본이 흔들리면 안 된다. 슬픈 반추(反芻)에서 벗어나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교훈과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한편으로 "조국(曺國) 사태로 우리는 대한민국 대학의 부패와 지성의 몰락을 확인하였다."는 말과 함께 이제는 분열을 넘어 대동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여, 야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했다.

 

다음은 지방분권운동 구미본부의 성명서 전문이다.


《성명서》
시민광장 분쟁에 대한 우리의 입장
구미시, 이제는 대동과 화합의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께서 순국하신 지 111주년이 되는 날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출신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 선생은 지역과 당파를 넘어서는 탁월한 지도역량으로 경기도에서 13도 창의대진소를 꾸리고 일제의 침략 만행에 맞서 전민족적 항일전쟁을 이끌었다. 선생의 열린 사고와 통합의 정신이 빛나는 대목이다.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에 구미에는 구미와 인동의 선비들이 두루 참여하여 1897년 조직된 난국계(蘭菊契)가 있었다. 난국계에는 당시 구미면, 고아면, 해평면, 산동면, 인동군 인동면의 선비 40여 명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구미와 선산, 인동을 망라하여 가장 영향력 있는 선비들의 모임이었다.
중심인물로는 왕산 선생의 장형(長兄)이신 방산(舫山) 허훈(許薰, 1836~1907), 구미면 도량동의 월호(月湖) 김지원(金志遠, 1841~1906), 산동면의 긍산(肯山) 이능학(李能學, 1841-1925), 인동의 청초(廳蕉) 장석기(張錫基, 1836~1918), 해평면의 식헌(息軒) 최헌식(崔憲植, 1846~ 1915) 등이 있으며, 왕산 선생과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1921)도 난국계의 성원이었다.

난국계의 인물 중에는 독립운동가도 여럿 있으며, 구성원의 면면도 다양하다. 월호 김지원은 구미가 배출한 빼어난 영화감독 김유영(金幽影, 1909~1940)의 증조부로서, 일선속지(一善續誌)를 저술한 역사학자였다.
일선속지에는 산동면의 명칭이 뚜렷이 명기되어 있다. 2009년 구미문화원이 국역한 일선속지 해제를 보면, 산외방이 일선속지의 편찬 당시에는 산동면으로 개칭되어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고증하였다. (심재완, 일선속지 해제, 일선속지 496쪽) 이는 산동(山東)이란 명칭이 일제 잔재의 산물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왕산 선생은 1870년, 15세 소년의 나이에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 1815~1900)가 주관한 부지암정사의 강회에서 서전(書傳)을 강송(講誦)하여 지역의 선배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처럼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지역의 선후배들과 교류하면서 성장하였다. 구미시의 전역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곳곳에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시민광장의 명칭을 두고 벌어진 1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친 최근의 분쟁을 지켜보면서 지방분권구미본부(이하 구미본부)와 구미근현대사연구모임은 왕산 선생의 후학으로서 후인으로서 실로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논란의 와중에 비켜 있었다고 해서 결코 초연할 수 없는 지역의 현안이었기 때문이다.
구미시민이라면 누가 선생의 선양사업에 대해서 이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왕산광장을 주장하는 구미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구미시가 좀 더 진지하게 협의하고, 상호존중의 마음으로 이견을 조정했다면 충분히 원만한 합의안을 도출했을 것이라고 구미본부는 굳게 확신한다. 그 간의 논쟁은 너무나 무익하고 소모적이라는 여론주도층의 지적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논란의 와중에 지난 10월 2일 구미본부는 중재안을 제출하였다. 시민의 입장으로 제출된 중재안은 하나의 의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시민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체의 입장에 연연하지 않을 것임을 거듭 밝힌다. 구미본부 제안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왕산 선생 기념사업은 가능하면 분산보다는 집중되어야 한다고 구미본부는 판단하였다. 현재의 장소에 왕산광장이 조성된다면 같은 이유에서 지금까지 추진된 기념사업의 중심이 임은동에서 왕산광장으로 이동되고, 자칫하면 기념사업의 근간마저 흔들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우려하였다.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은 출생지인 임은동에 위치해 있으며, 2009년 9월 28일 개관되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은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방문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이는 왕산기념관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에 산재한 기념관 중심의 기념사업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난제다.
구미본부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구미시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기념관 운영에 내실을 도모하면서 왕산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발굴로 기념사업의 중심이 전환되어야 한다.
구미본부는 지금까지 내부의 역량을 집중하여 선생의 청년 시절의 교우관계와 개화를 수용한 결정적 동기에 대한 자료 발굴에 주력하였다. 왕산 선생의 발자취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선후배들의 문집에서 조금씩 발견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구미시에 다음 사항을 제안한다.

⓵ 1년에 한 차례씩이라도 선생에 대한 학술 토론회, 논문발표회가 개최되어야 한다. 그렇게 자료와 연구 결과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기념사업의 내용도 조금씩 충실해 질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도 가져본다.

⓶ 기념사업이 좀 더 시민친화적이고 관심층(Mania)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유치원 원아들부터 초등학교에서 대학생까지, 주부들, 노년층에 이르는 관심층들이 1,000명 정도에 이른다면 방문객 부족으로 인한 고민도 자연스레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왕산을 따라 배우는 “왕산지기”를 꾸리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42만 구미시민부터 왕산 선생의 관심층이 되어야 한다. 구미시민이 존중하지 않는데, 다른 도시의 시민이 존중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왕산선생기념관에는 대구나 다른 도시에서도 방문객이 오고 있는데, 구미시민들의 관심은 그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은 현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⓷ 왕산 선생의 유일한 저술인 왕산선생문집은 빠른 시일 안에 국역되어야 한다.

 

둘째, 이번 논란의 과정에서 낙동강을 중심으로 나누어진 강서(江西) 지역과 강동(江東)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확인되었다.

그동안 수면(水面) 아래 잠재되어 있던 문제점이 이번을 계기로 표출되었다고 구미본부는 판단한다. 이러한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반드시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작은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는 데서 화합의 단초 또한 자연스레 마련된다는 점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군자의 도리이다.
강동에는 강동의 광장이 강서에는 강서의 광장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화합의 길은 상호존중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시민광장이 조성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광장의 문화가 꽃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양의 도시들은 대개 광장을 중심으로 성장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 광장은 매우 익숙한 문화이다, 현대에 와서도 유럽 도시의 광장은 상업, 소통, 문화가 어우러지는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광장은 아직 일반화된 상태가 아니다. 광장이 생활의 중심지로 문화와 연결된 곳은 기껏 서울의 시청광장, 광화문광장, 여의도광장 정도가 있을 뿐이다. 기능도 아직까지는 문화와 생활의 중심지 역할보다 오히려 정치 집회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지방에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역을 중심으로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구미도 마찬가지다. 구미역 광장이 있지만 “생활과 소통의 광장”으로 기능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지금까지 구미시의 도시계획에서 광장의 개념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구미시와 43만 구미시민은 공단 조성 50년을 경과한 지금에야 비로소 1호 광장을 가지게 되었다.
42만 시민의 지지와 관심 속에 출발하는 시민광장이 아니라면 기대와는 달리 사상누각으로 변질되고 불필요한 논란으로 이어질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한 시민광장인가를 한 번쯤은 되돌아볼 시기가 되었다.
 
셋째, 누각에 대해서는 구미본부로서는 흔쾌히 동의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각의 명칭이 어떻게 결정되든지 모두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다. 전례가 없다면 만들면 되는 것이고 세계 최초라면 그것도 있을 수 있다. 화합의 길에 작은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대체로 누각은 절경 위에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곳에 세워진다. 누각의 일차적 용도가 빼어난 절경을 감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일망무제로 탁 트인 절경 위에 세워진 진주의 촉석루, 강물이 주위를 에워싸고 경관이 빼어난 곳에 세워진 영남의 밀양루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은 명소였다. 안동 병산서원 내에 조성된 만대루도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민광장 안에 조성된 누각은 잘 조성되었기는 하지만 주변의 경관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생경하다. 아파트 공간에 둘러싸인 곳에 누각이라니 그것도 어색하다. 거액의 조성비용에 비해서 용도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문화공연에 좋은 배경은 되겠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은 될만하다. 유지비용과 관리방안을 생각하면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임금이나 황제를 기린 누각도 아예 사례를 찾을 수 없다. 단지 중국 장시성 신건현(남창) 서쪽 공강을 바라보는 곳에 세워진 등왕각(滕王聞)이 있을 뿐이다. 등왕각은 당 태종의 아우 등왕 이원영(李元嬰)이 홍주도독으로 재임한 시기에 세운 누각이다. 중국 강남의 3대 명루(名樓)이고 난창의 상징 건축물이다. 대체로 누각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울산의 태화루도 마찬가지다. 태화강변 황룡연 절벽 위에 세워졌다면 그 자체가 절경이고, 역사적 연원도 깊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시민광장 안에 조성된 문제의 누각은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절경은 결코 아니며, 명소로 알려진 다른 누각과는 아예 비교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오히려 예산 낭비에 가깝다.
무엇 때문에 누각을 고집하고, 더구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의 호를 명칭으로 해야 하는지 구미본부로서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10월 14일 광복회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후손분들과 광복회가 기자회견을 갖고, 명칭 변경을 되돌리거나 투명한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을 촉구하였다. 참으로 지당하고, 절제된 의사표현으로서 구미시는 이를 경청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그러나 구미시는 지금 2020년에 개최될 전국체전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구미시는 시민광장 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한다. 분쟁을 극복하고 대동과 화합의 큰길로 나아가야 한다.
구미시에는 42만 구미시민이 있고, 시민을 대표한 구미시의회도 있으며, 구미를 지켜온 지역원로도 있고, 인격자와 유력한 정치인, 역사학자, 언론인, 시민단체의 지도역량도 있다. 모두의 지혜를 모은다면 시민광장 문제의 원만한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바로 구미본부가 강조해 온 협치(協治)이다!!!

이에 구미본부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첫째, 구미시는 왕산 선생의 유족들과 광복회에 즉각 대화의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구미시는 임은동 왕산선생기념관의 운영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셋째, 구미시는 왕산선생기념사업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청사진을 수립하여야 한다.

넷째, 구미시는 구미시의회와 함께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시민원탁회의를 소집하라!!

시민원탁회의에는 유족들과 광복회, 지역 보훈단체 대표들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2019. 10. 21 

                지방분권운동구미본부
           구미근현대사연구모임

연락처: 상임대표 김종길 010-5476-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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