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위원회 김상숙 성공회대 교수, 구미 선산 이문리 학살 사건 진실규명활동에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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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이문리 학살 사건 진실규명을 위해 진실화해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뉴스민 구미 양양재 방문

 

(전국= KTN) 김도형 기자= 19일 구미시 신동에 위치한 양양재에 2기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위원인 김상숙 성공회대 교수와 채영희 10월 항쟁유족회/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대표, 천용길 뉴스민 발행인 일행이 방문해 6.25 당시 구미지역 이문리 학살사건을 비롯하여 지역 과거사에 대한 지역 인사들을 만나 구술체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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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양양재에서 김상숙 교수 일행은 과거사 진실규명을 위해 김종길 구미독립운동사 자문위원과 장세용 전 구미시장(대구경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창숙 전 도의원(기슈광산 강제동원 희생자 진실규명 활동)과 함께 담소를 나눴다.


김상숙 교수는 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에 대해 "2기 조사는 증인들을 찾을려는 취지가 있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된 사건만 하다보면 사건 배경이나 지역사는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잘 아는 지역향토사학자 등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라는 취지가 있다."고 밝혔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문재인 정부 당시 피해자들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린 김상숙 교수는 "예산을 비롯해 조사관이 부족한 상태에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서 신청 사건 수는 1기 때의 2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관 수는 1기 때보다 훨씬 적고 조사기관도 적은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신청 사건만 조사하는데도 일손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경과에 대해 "1기 당시에는 진실규명을 하고 난 다음에 배보상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진실규명만해도 큰 사건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한편, 이후로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받은 뒤 재판을 통해 국가로부터 배보상을 받게됨으로서 지금 신청하는 유족들은 배보상 기대를 많이 하게 된 양상이라고 했으며 "배보상을 받겠다는 기대심리가 있으므로해서 조사 자료가 나중에 배보상의 기초자료가 될 수 있어서 더욱 개개인이 죽은 경위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현실이서 직권조사를 잘 못하는 현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장세용 전 구미시장은 " 6.25 당시 이곳 신동 일대는 전신주가 절단된 것 으로 인해 피난 안간 아이들을 모아 16명 가량이 죽음을 당했다."며 참혹했던 과거에 대해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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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구미독립운동사 자문위원은 "금오산 밑 골짜기에도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학살이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기를 꺼려하고 있다."며 "지역의 흉사 자리에 참석하다보면 뒷자리에서 지역민들이 박상희 선생 때문에 누가 끌려가서 법성사에 죽었다. 당시 소 두마리값이면 석방될 수 있었다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라고 해 지역의 어두었던 과거사에 대해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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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숙 교수에 따르면 "진실규명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지역민들이 신고하라고 해도 아직도 겁이 나서 신고를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국가에 기록이 남으면 혹시 후손들이 우사를 겪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며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과거사 문제의 이면에 대해 얘기했다.


김상숙 교수는경산코발트 학살사건에 대해 "(민간인학살)유족회 회원들 일부는 1기 당시 진실규명을 받았다. 1기 때 진실규명 받은 희생자 숫자만큼 시에서 재수 비용이 나오고 위령재를 지낸다."라는 사실을 얘기했으며, 경산 코발트 광산 진실 규명을 위해 활동했던 김창숙 전 경북도의원은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발굴된 수 많은 유골들이 컨테이너에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현실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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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희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대표는 "경산 코발트 광산 진실 규명 당시 당시 장세용 시장이 많은 도움을 줬다."라며 경산 코발트 광산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과거사 자료 등을 통해 세상에 진실을 알렸던 활약에 대해 덧붙여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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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당시 2001년 4월 출범해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 12월까지 약 4년 7개월간  과거사 진실규명 활동했다. 이후 활동이 종료됐으나 지난 2020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개정됨에 따라 동년 12월 10일부터 제2기 활동 중이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있었던 항일운동과 한국전쟁 전후시기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 테러·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에 대한 진실규명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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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고사와 양양재 연혁

 


평고사는 월포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우다.

본래는 평고서당에서 병인년(1866)에 향중 사림의 중의에 따라 제향을 받들었었는데 고종 무진년(1868)에 사우가 철폐되었던 것을 기축년(2009)에 복설한 것이다.

선생의 성은 장씨이고 관향은 인동이며 휘는 현도이고 자는 덕우이며 월포는 호다.

여헌 선생(휘 현광)의 종제이고 한강 정선생(휘 구)의 문인으로 학행이 탁월하였고 한강 선생의 예설을 교감하였으며, 특히 심경과 근사록에 조예가 깊었다.

선생은 명종 계해년(1563) 11월에 성주 암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인조 갑술년(1634)에 향년 72세로 생을 마쳤고, 아들 우일(호 귀로정)의 존귀함으로 인하여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양양재는 월포선생을 존모하기 위하여 세운 제사이다.

양양이란 즉 중용의, 조상의 신이 어렴풋하게 마치 좌우에 계시는 듯하다. 라고 한 것의 뜻을 인용한 것이다.

창건한 연대는 고종 경인년(1890)에 후손인 형표씨가 주관하여 창건한 것이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고 기축년(2009)에 평고사를 복설하면서 다시 중건한 것이다.

참고자료: 월포선생유고, 사미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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