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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종희 미술관을 가다.

사회부 0 1436

(전국= KTN) 김도형 기자= 천년고찰 봉정사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김종희 미술관은 160년 된 보호수인 느티나무와 함께 아름다운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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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국내화단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 김종희 서양화가가 2019년 10월 개관한 김종희 미술관은 경북 안동이 명실공히 국제적인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는데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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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아래 담벼락도 대문도 없는 김종희 미술관은 나무와 함께 한폭의 그림과 같은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점잖게 보이는 두 마리의 순한 개들이 손님을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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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된 잔디 마당이 있고 푸른 숲속에 자리잡은 느낌의 미술관은 자연 속에서 멋진 미술작품들을 감상하며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인이 없어도 개방되어 있는 전시관은 방문객을 잠시 머믓거리게 만들고 머슥하게 만든다. 관람객의 자유의지에 모든 것을 맡긴 김종희 미술관의 가슴 넉넉함이 새삼 느껴지고 작가의 일생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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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7년 전 마라톤을 인연으로 만난 김종희 서양화가에 대해 아는게 없었지만 여기에 방문함으로서 그제서야 한 예술가가 살아온 인생의 한자락을 눈과 마음으로 보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김종희 관장이 봉정사 가는 길목 느티나무 밑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사연을 청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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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유럽의 시골마을에 위치한 미술관 같은 느낌도 있고 자연과 벗삼아 작품 감상을 하니 더 좋은 느낌이다. 세계적인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게 해야지요. 느티나무 밑에 천년고찰 가는 길목에 자리잡았으니까 작품도 거기에 버금가게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지금부터 작가들이 60이 되면 농익은 작품 세계가 펼쳐집니다.


작업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을 계속 개방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제가 터를 잡고 여기서 했던 작품들이 쌓일 때 그 때 미술관을 개방하고 지금은 주말에만 일부 개방을 하고 있습니다.

 

Q) 미술관이 개방되어 있어서 우려할 만한 부분은 없는가?


어릴적부터 지적받은게 문단속을 하지않는다고, 그런데 그 문을 닫는다는게 저한테는 굉장히 불편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옛날에 사람들이 와서 그림을 다 갖고 가면 어떡하냐고 그랬어요.


그림 다 갖고 나가면 작가가 살아있으면 계속 그리면 되지 뭐 그런 생각.


(Q)그런 마음이 보였다. 작품을 공유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여류로운 마음?


가끔씩 작가가 있는 작업실을 가면 작가를 만나는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작가가 떠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작품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어떤 시에도 그런게 나와있다고 했습니다.


시인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그 시인은 바람처럼 어디로 간듯 없고 흰 신발이 고무신이 댓돌 위에 있어서 거기에 하염없이 앉았다가 시인을 품고 돌아온다는 이야기처럼 작품을 만나는 것이 작가를 만나는 것보다 훨씬 좋다라고 했다.



Q)저는 작품의 깊이에 대해 모르지만은 피카소가 연상된다. 그림이 추상화쪽이지죠? 각 작품들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들이 있을 건데 그런 것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거의 많은 것들이 저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이예요. 


제가 겪어낸 많은 이야기를...... 새벽에 강을 가서 왜 새벽에 강을 갔으며 그 강에서 내가 무엇을 찾고, 무엇을 그리고 왔는지 이런 것을 보면 강을 바라보는 모습 작품처럼 이렇게 일상들을  그리고 그 강가에 새벽강을 보고 다시 또 달이 뜰 때, 또 강에 갔을 때 이야기들, 이런 것들을 다소 어떤 주제에 따라서 어떤 내용에 따라서 곡선을 많이 쓰기도 하고 피카소처럼 직선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우리가 마치 어떤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서 재료를 다르게 쓰는 것처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서 거기에 맞게 때로는 추상적으로, 어떤 때는 좀 더 많이 과감하게 생략을 하거나 좀 더 묘사를 많이 하거나 그 대상에 따라서 거기에 맞게 색감이나 선들이 쓰이고 있습니다.


Q)다른 곳에서 작업하는 것 보다 여기서 작업하는 것은 영감이랄까? 그런게 더 많이 떠오를 수 있겠네요?


지금은 아직까지는 제가 미술관을 짓고 제가 60이 되면 정처를 정리해 산다고 정해서, 60이 되어서 미술관을 짓게 된것이거든요. 그래서 그 이전에는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었죠, 정한 곳이 없으면, 아 여기 와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아니면 물가에 와서 이 강가에 와서 그림을 그리고 작업실을 했으면 좋겠다 그랬더니만은 그렇게 하면 옮겨 다닐 수 있는데, 정처를 하면 거기에서 머물다가 보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고 하고 또 더이상 신선한 자극을 못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생각을 20대에 환갑이 지나서 나의 정처를 정하고 그 이전에는 내가 여기저기 다니니라 정해서 지금 와서 돌아보니깐 너무 일찍 정처했다.


한 70되서 정해도 될 것을.(웃음)


Q)이 서후면이라는 곳의 특징은 나름대로 천년불패지지라고 해서 옛날부터 풍요롭고 외세의 침입도 없고 그러한 좋은 명승지라고 들었다.

여기에 정착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7남매이고 시골에서 제가 미술대학을 보내줄 정도로 그 당시에 형편이 녹녹치 않았습니다.


제가 미술대학을 보내달라고 하니까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라면도 못 끓이고 국수도 못 삶아 먹는다. 죽도 못 끓여 먹는다라면서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를 해서 다른 대학을 가서 돈을 벌어서 준비를 해서 30이 되면 미술대학을 나 스스로 가리라 이렇게 생각을 해서 그 때 제가 간호대학을 갔어요.

 

왜냐하면 간호사들은 3교대를 하니깐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간호대학을 대학교 2학년 때 친구가 저희들이 5명의 친구가 있는데, 안동과학대학에서 저는 대학을 다녔으니깐 여름방학 때 봉정사 나들이를 오게되었어요,


그래서 막차를 놓쳐서 걸어서 내려오다가 여기 앞에 정자에 있는 나무(느티나무)에 앉아서, 막차는 떠났지요. 그랬더니 마을에 경운기가 털털 내려와, 경운기를 얻어 타고 면소재지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갔었는데 그 때 제가 여기 앉아서 "야 이 느티나무 진짜 멋있다. 나중에 60이 넘으면 여기에서 미술관을 지을까?"

 

Q)아.... 그래서 그 때 결정하셨구나


네, 그리고 나서 간호사 하면서 미대 준비하고 서른되어서 간호사를 그만두고 미술대학에 지원해서 저 때 후보 3번으로 떨어지고 또 그 다음에 지각해서 떨어지고(웃음)


그래서 3수를 해서 미대를 들어가서 대학 다니면서 이 근처 여기에서 3킬로미터 되는 지점에 95년도에 초등학교가 폐교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후면 관내에 송강초등학교라고 있는데 그 학교가 폐교되어서 학교를 몇몇 선생님들하고 같이 작업실로 썼어요.


그러니 토요일 일요일 되니깐 자연히 이곳으로 스케치 여행도 오고, 나무 밑에 앉아서 이 터를 구경도 하고...... 이래 이래 하다가 송강초등학교에서 30대를 보내고 그 다음 해에 유학을 가면서 다시 내가 돌아와서 환갑이 되어서 정처를 정하게 되면 저 둔치 나무 밑에 "이 터를 자리 잡으리라" 이렇게 생각해는데, 어느날 전세호 선배가, 79학번 그 분이 "종희씨 작업실 없으면 내가 얼마 가까운 곳에 서후에 터를 사놨으니깐 거기에 컨테이너 박스 갖다놓고 써, 그건 내가 사놓은거야!" 그러셨다.

 

그래서 와서 보니 이 터인 거예요. 제가 "세호 선배 제가 나중에 여기 들어와 살라고 했는데 잘 잡고 있어" 그래서 세월이 지나서 그 선배가 다른 분에게 팔았는데 60이 되어서 미술관을 지을려고 터를 여기저기 보고, 이 동네에 들어와서 저 위에도 보고 이 뒤에도 보고......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을 터를 보러 왔는데 마침 이 터를 내놨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이 터를  저희가 샀어요. 그래서 가끔 전세호 선배님이 "아 이 터, 옛날에 진짜 소원대로 됐네!" 


Q)신기하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같은 얘기지만 아름다운 좋은 얘기같다.


대학교 때 간호대학 다닐 때 그 친구들이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그 친구 중에 한 명이 광평이라고 여기 가까운 곳에 살아요. 


"춘화야 나 미술관 지어. 이제 60 되서" 그랬는데 설마하니 그 느티나무 밑에 짓는 것은 아니겠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왜? 거기 지으면 안돼?"


"와! 너 진짜냐?"라고 했죠.


봉정사 주지스님께서 지금은 고운사 주지스님으로 가셨는 등운스님께서 제가 미대 다닐 때 인연이 있어서 가끔 뵜고, 그 스님도 79학번으로 옛날에 안동대 미대를 다니셨어요.


출가 하시기 전에 그래서 저도 미대를 늦게 갔더니 인연이 되어서 뵙기도 하고 제가 프랑스 갈 때 인사를 드리고 하다보니깐 제 꿈도 미리 말씀 드렸고 여기서 미술관을 하게됐다 말씀드리니깐 스님께서 오셔서 "간절하게 원해서 이루어 지는 것을 원력이라고 한다."리며 그 힘이 자리 잡게했다고.


(봉정사 만큼 불후의 명작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앞으로 더욱더 건강하게 작품활동도 하길 바라며 건강하면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것 같다.)


그래서 마라톤을 하죠. 대회 다시 도전 해볼려고, 3시간 30분 벽을 깨야 되는데......


Q)아유,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필자는 마라톤 기록 3시간 50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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