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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뉴텍그림이야기 (29) - 나폴레옹 대관식(자크 루이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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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대관식, 자크 루이 다비드, 1805~1807년, 621 x 979 cm

 

[KTN=전국] 이용범 기자 = 이 작품은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에 의해 그려진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그린 그리이다. 그림을 통해 영웅을 만든다'라는 나폴레옹의 과제를 완벽하게 실현한 정치적 목적으로 그려진 나폴레옹을 위한 나폴레옹의 그림이다.

나폴레옹은 급 부상한 정치적으로 백 그라운드가 전무한 시골 군인 출신이다. 그러다 보다 누구보다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이러한 관계로 나폴레옹은 예술을 자신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 사용하였다.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한 예는 나폴레옹 만이 아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그랬고, 구 소련의 스탈린이 그랬으며, 북한의 김일성이 예술을 선전도구로 활용한 특별한 예들이다. .

교묘한 과정을 거친 정치적 예술 행위는 대중을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몰고 가는데 탁월한 힘을 발휘하기에 특히나 독재자들은 예술을 철저히 활용한다. 이러한 독재자들의 예술 활용에는 언제나 하수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자크 루이 다비드'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신고전주의 화가였지만 스스로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였다.

파리 출생의 다비드는 일찍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였다. 1775년 로마로 유학하여 고대 미술에 큰 감명을 받아 역사화를 그려 고전주의의 지도자가 되는 한편, 근대 회화의 시조가 되었다. 다비드는 이후 프랑스 혁명의 전폭적인 지지자가 되었고, 프랑스 공화국 하에서 사실상 예술의 독재자 역할을 하였다. 나폴레옹 1세의 정치 체제에 협력하였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궁정 화가가 되어 나폴레옹의 철저한 정치적 하수인이 된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실각과 함께 국외로 도망 가야만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혁명에 깊게 관여한 다비드는 현재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파랑, 하양, 빨강)을 고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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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쓰는 조세핀 드 보아르네 (부분 확대)

 

이 작품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610×931㎝ 의 대작으로 804년에 스스로 황제를 선포하고 제위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 장면을 그린 것으로 현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이다.

원래 다비드나폴레옹이 스스로 관을 쓰는 장면을 그리려 했으나 교황 측의 항의가 있어 나폴레옹조세핀 드 보아르네에게 관을 씌워주는 것으로 바꿨다고 한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스스로 관을 쓰는 모습을 그린 수정 전 스케치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또 원래 다비드는 교황이 맥없이 손을 떨구고 나폴레옹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리려고 했으나, 이 초안을 본 나폴레옹"대관식 구경이나 시키자고 짐이 교황을 로마에서 여기까지 모셔왔단 말이냐"라며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 교황이 손을 들어 축복하는 모습으로 바뀌기도 했다. 어쨌든 그림 속 교황청 사람들의 씁쓸해 하는 표정은 당연한 셈이다.

그림에 나온 교황은 비오 7세이다. 나폴레옹에 의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여러 번 감금당하는 수난을 겪은 교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오 7세는 수도회 출신의 거룩한 성품과 인격을 구비한 사람이었으며, 결국 나폴레옹의 최후의 순간에 절해고도에 고해 사제를 파견하여 나폴레옹의 마지막을 지켜주도록 함으로써, 원수를 은혜로 갚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에선 다들 복장이 화려해서 누가 교황인지 알아보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폴레옹 바로 뒤에 앉아 흰 주케토를 쓰고 옷깃에 검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으며 손을 들어 축복을 해주는 포즈의 검은 머리의 남자가 비오 7세이다.

이 그림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몇 개 더 있는데, 조제핀나폴레옹 가족들의 관계는 지극히 나빠서 실제 대관식에서는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지아 보나파르트와 누이들 전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림에서는 화목한 가정을 원했던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근엄하게 즉위식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이 새로 그려졌다. 그림 중앙에서 약간 왼쪽 귀빈석 중앙에 흰색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는 귀부인이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지아 보나파르트이다.

 

그리고 조제핀에 대해서도 역시 나폴레옹의 요청에 따라, 필요 이상으로 성녀 이미지로 미화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에 다비드가 한마디 하길 "불만 있으면 황제한테 직접 가서 따지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림에서는 20대의 순결한 성처녀처럼 그려졌지만, 대관식 당시 조제핀은 40대였다. 물론 조제핀은 미모로 한가락 하는 여자들로 우글거리던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도 탑 레벨에 속하는 미인이었다.

 

이렇듯 다비드의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실제 그대로 묘사했다기보다는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살리기 위해 대관식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상당 부분을 각색한 창작품에 가깝다. 나폴레옹은 다비드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여러 번 찾아와서 보고 수정을 지시하곤 했었는데, 1시간 이상 그림을 묵묵히 보던 나폴레옹이 다비드에게 문득 “당신을 존경한다"라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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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브르 박물관 버전과 베르사유 궁전 버전에서의 '폴린 보르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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