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학봉문중 사람들 <한국유통신문.com>

선비 0 1,603

(전국= KTN) 김도형 기자= 지난해 4월 19일 안동시 서후면에 위치한 학봉종택 풍뢰헌에서는 의성김씨 문충공파 친목회와 함께 사단법인 학봉선생기념사업회 이·취임식이 열렸다.

 

100.JPG

 

학봉 김성일 선생은 1538(중종33)~1593(선조26)인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서 경북 안동 출신이다. 본관은 의성이며 퇴계 이황 선생의 수제자다.

 

올곧고 강직한 성품의 김성일 선생의 가풍을 이어 받은 학봉문중 사람들은 전국에 걸쳐 사회 각 분야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한 바른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성일 선생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린 시대 상황에서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왜란 초에 파직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경상도초유사로 임명돼 왜란 초기에 피폐해진 경상도 지역의 행정을 바로 세우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힘을 썼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줬다.

 

*초유사(諭使): 난리가 일어났을 때 백성을 초유(招諭:불러서 타이름)하는 일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

 

또한 김성일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초유사로 활약하며 의병의 봉기를 독려했고 인물의 고장 의령 출신 곽재우 장군의 거의에 큰 도움을 줬다.

 

임진왜란 당시 경삼감사 김수와 곽재우 장군의 심각한 갈등을 중재함으로서 곽재우 장군이 큰 공을 세우는데 조력했다. 

 

577548633.jpg

 

BB_-dthumb_phinf_naver_net.jpg

 

곽재우 장군이 가산을 털어 의병을 거의할 당시 정대성이라는 자는 사람을 모아 의병이 아닌 도적질을 일삼았고 합천군수 전현룡은 곽재우를 도적으로 의심해 경상감사 김수에게 보고했다.

 

임진왜란 개전 후 김수가 싸우지 않고 퇴각하자 이에 분노한 곽재우 장군은 김수에게 격문을 보내 책망했고, 이에 김수는 곽재우 장군을 역적을 했다며 장계를 올려 비변사에서 조차 곽재우 장군을 의심했다. 

 

곽재우 장군은 초유사 김성일을 찾아와 김수를 비판했지만 김성일은 곽재우를 잘 타일러 전투에 나가게 해 공을 세우게 했다. 초유사 김성일은 장계에 김수와 곽재우 장군간의 갈등을 정리했다. 더불어 곽재우가 중요한 인재 임을 조정에 보고함으로써 이들의 관계를 수습했다.

 

다음은 경상도 초유사 시절 학봉 김성일 선생이 김수와의 갈등관계 있는 곽재우 장군을 타이르기 위해 보낸 편지다.


 의병장은 처음 변란이 일어났을 때부터 재산을 있는 대로 다 털어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자신의 몸은 돌아보지 않은 채 한결같이 나라를 위하여 왜적을 칠 마음만 가졌으니, 비록 옛날의 열사(烈士)라 하더라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소.


당직(當職)이 경내에 이르러서 즉시 글을 내려 불렀더니, 의병장은 늙고 졸렬한 나를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고 단성(丹城)으로 와서 나를 만났는데, 한 번 인사하는 사이에 이미 자신을 잊고 나라를 위하여 죽을 뜻이 있음을 알았소.

 

그 뒤에 외로운 군사를 이끌고 낙동강 가를 횡행하면서 앞장 서서 적을 쳐 머리를 벤 것이 매우 많았으므로, 왜적들이 함부로 몰아쳐 들어오지 못하여 이 일대의 여러 성들이 지금까지 보전되었는바, 아름다운 명성이 사방으로 퍼져 듣는 사람마다 모두 고무되어 원근에서 메아리치듯 호응하였소.

 

이에 왜적을 쳐 없애는 공을 세우는 것을 날을 세어 가면서 기약할 수 있었는바, 영웅다운 풍도와 의열한 마음은 당대에 빛날 뿐만 아니라 장차 역사에 드리워져 후세에 전하여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오.


그러나 홀연히 듣건대, 의병장이 순찰사의 영문(營門)에 격문(檄文)을 보내어서 감히 패역스러운 말을 함부로 하였다 하오. 방백(方伯)이 어떠한 관원이고 의병장은 어떠한 사람이기에 감히 이런 일을 한단 말이오. 방백이 실제로 죄가 있다 하더라도 조정에서 처치가 있을 것인바, 도민(道民)이 손댈 일은 아닐 것이오.


의병장은 충의로운 집에서 태어났으며, 적을 치는 의병을 일으켜서 큰 공이 장차 이루어지려 하는데, 스스로 몸을 죽이고 일족까지 멸망당하는 지경에 빠지는 짓을 할 줄을 내가 어찌 헤아리기나 하였겠소.

 

당(唐) 나라의 배반한 졸개가 주수(主帥)를 찬역(簒逆)하여 쫓아내었다가 화를 당한 사람이 무릇 몇 사람이나 되었소. 그런데도 앞서 실패한 일을 다시 되풀이하려 한단 말이오.


돌아오는 길을 잃은 것은 《주역(周易)》에서 경계한 바이며, 화를 돌이켜서 복으로 삼는 것은 지혜 있는 선비가 취할 바이오. 내 말을 따르면 순하게 되어 복이 많을 것이고,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거스르게 되어 화를 받을 것이니, 그 기미가 털끝만한 여유도 없는 만큼 의병장은 잘 생각하길 바라오.

 

오늘날 김성일 선생의 업적은 사학계의 학술대회를 통해 그 면면이 밝혀지고 있고 의병규합과 진주성 보전에 큰 기여를 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지난해 150여명의 학봉문중이 참여한 친목회에서 취임한 김웅대 학봉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학봉선생기념사업의 중요성과 어깨 무거움을 토로하며 학봉 김성일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데 최선을 다하겠음을 의지 밝혔다.

 

3.JPG

 

학봉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해오고 있다.

 

▲75.국역학봉전집(양장본 포함)▲79.임천서원 중수▲81.촉석누중 삼장사시 고증(김시박저) 발간▲87.학봉유물관 운장각 건립▲94.학봉선생순국4백주기기념 학술발표회 기념논문집발간▲98-02.국역학봉전집 전6권-민족문화추진회 발간▲03.일본 대마도 학봉 시비 건립▲05.보령 비공원에 학봉선생 시비 건립▲06.이홍구 회장 취임 학봉김선생기념사업회 기금조성시작▲07.김명준저 임진왜란과 김성일 전국도서관 배포▲11.학봉기념관 건립▲12.학봉기념사업회 법인설립(이사장 김종환), 임란직전 통신사행과 귀국보고 학술회의-한일관계사학회주취.후원, 1590년 통신사 활동과 귀국보고 재조명 출판 배포▲13.임란의병과 진주대첩-학봉김성일의 활동을 중심으로-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주최.후원, 이사장 김도현 취임▲15.이사장 김웅대 취임

 

현재 학봉선생기념사업회에서 추진 중인 사업으로는 ▲호계서원 이건 추진중, 송학(청송)준공 위패봉안. 영산서원(영양)건립예정▲임천서원 이건과 학봉호국기념관 건립 추진중▲을미의병(서산 선생)2주갑 기념 행사 추진중▲운장각 도록▲학봉 선생 초상화 제작▲임란기념 도서자료관▲의병기념 도서자료관▲호계서원지 발간 추진▲임천서원지 발간 추진 등이다.

 

 

2.JPG

 

 

 

<한국유통신문 경북본부장 김도형> flower_im@naver.com

<저작권자(c)한국유통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가능>

,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