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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봉곡동에 위치한 밀양 박씨 경주 부윤공파 제실 봉곡제 |
(전국= 한국유통신문) 김도형 기자= 19일 구미시 봉곡동 173-1번지에 위치한 밀양 박씨 경주 부윤공파 종중 제실인 '봉곡제'를 방문했다. 다름아닌 밀양 박씨 경주 부윤공파가 배출한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의 차남인 박정용씨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봉곡제는 종중의 저력을 보여주는 듯 수려했고 사뭇 웅장한 건물은 마치 여느 조선시대 세도가의 저택을 방문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곳은 가문의 힘을 모아 선대를 기리고 후손을 번영키 위한 노력과 지혜로 만들어진 결정체며, 우리나라 각 지방마다 존재하는 명문가문의 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전자전,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달라도 뭔가가 다르다.
박정용씨는 금년 66세이시며 현재 박희광 선생 기념사업회(명예회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 사무처장을 맡고 계신다.
박정용 사무처장의 노력과 지난 행적들에 대해서는 지난해 2월에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의 과거 업적을 취재하던 차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처음 기사를 올린 뒤 얼마지나지 않아 박 사무처장으로 부터 감사의 전화를 받게되었다.
칭찬 받고자 한 일도 아니며 그렇다고 박희광 선생의 업적을 홍보하고자 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약관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오로지 대한 독립을 위한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목숨을 건 행보를 보였던, 시대의 영웅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함께 기자 또한 자랑스러운 경북 북부지방 출신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인물의 삶이 궁금해서였다.
몇 번의 통화가 있었는지라 어색하지 않게 따뜻이 맞이해 주는 박정용 사무처장의 안내로, 봉곡제 내의 청덕정 정자에 앉아 그동안 기념사업회를 위해 노력해 오신 일화들에 대해 앎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익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던 사실들일지라도 박희광 선생의 직계 자손인 박정용 사무처장으로부터 들으니 새로웠고, 신문지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과거의 치열했던 노력을 깨닿게 해주는 자리였다.
박 사무처장은 칠곡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구미출장소에서도 근무했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일했다고 하신다. 공직으로 바쁜 와중에도 박희광선생 기념사업회 일을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해오셨던 과거가 느껴진 자리였다.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기념사업회는 1972년 8월 15일에 발족되었으며 이듬해 2월에 기념탑 건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동년 3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애국지사박희광선생지상' 휘호와 함께 하사금 일백만원을 받아 동상(흉상)을 주조하게 되었다.
이후 난황을 겪어오던 기념사업회는 1984년 8월 15일 구미문화원(당시 김교홍 원장)의 도움으로 동상건립 기공식을 하게 되었고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최기원 교수가 제작을 맡았다.
당시에 동상건립을 위해 각 학교에서 학생들이 모금을 일일이 모았다며 옛 기억을 더듬으며 옛일을 회상하신다. 우여곡절 끝에 84년 12월 28일에 최초의 제막식을 가지게 된다.
10년 뒤 동상건립 10주년 기념 추모식이 있은 후 96년 4월 10일 대구 동상조각상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된다. 박정용 사무처장은 사비 7천만원 가량을 털어 정부 지원금과 함께 1997년 동상조각상 건립제막식을 갖게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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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덕제 정자에 1시간여 동안 앉아 지나온 일화들을 듣게 되었다. |
동상은 2003년 2월 14일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제30-1-1로 지정됬으며, 2010년 3월 1일에는 고향옛터생각복원과 추모기념관 건립 추진이 발족되었다. 그동안 박정용 사무처장이 국가보훈처를 비롯해 각 기관을 뛰어다니며 노력한 결과 2010년 12월 23일 예산 확보 목표 총 12억 중 경북도비 9천만원과 구미시 9천만원, 기념사업회 1억원을 모으게 되었다.
2011년 11월 17일에는 금오산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동상 복원과 함께 '통일염원태극시문양조각상'이 건립 제막 되어 현재 금오산의 훌륭한 문화적 자산으로 매김해오고 있다. 더불어 박 사무처장으로부터 요즘의 동상은 녹이 슬지 않도록 스테인을 함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사실도 들어 알게 됬다.
박정용 사무처장은 어린시절, 늘 아버지인 박희광 애국지사의 머리맡에 누워 독립운동 활약 당시의 얘기를 비롯해 오랜세월 옥고를 치뤘던 얘기를 듣고 자란 지난시절을 회상했다. 1900년 태생이셨던 어른께서 그 시절에 천연두와 같은 질병으로 인해 숱한 아기들의 생명을 앗아갈 시기여서 출생신고를 4년 뒤늦게 하게 된 사연을 알려주셨다.
그로인해 박희광 애국지사가 일본경찰에 1924년도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을때, 체포될 당시의 나이가 미성년자인 까닭에 천우신조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함께 체포되었던 김병현 애국지사는 안타깝게도 사형을 언도 받았다.
부친인 박희광 애국지사께서 자신의 호적을 정정해달라며 아들에게 부탁했던 사실과 그 이후 박정용 사무처장이 오랜세월 부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노력했던 일화들 하나하나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애국지사의 선양 사업은 국가가 해주지 않는다. 유족들 스스로가 직접 나서야만 한다.
박정용 사무처장은 대다수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스스로 나서 독립운동가인 부친과 조부의 선양사업을 하는데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얘기하며, 그 누구보다도 후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알려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밀양박씨 경주 부윤공파 종중에서는 박희광 선생 기념관 건립을 위해 토지를 기증했고, 이날 박정용 사무처장을 통해 그 터를 보게 되었다. 땅값이 비싼 노른자위 땅을 내놓은 종중의 결정도 귀감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기념관이 들어서게 되면 밀양박씨 경주 부윤공파의 후손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긍심과 명예를 갖게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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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중으로 부터 600여평의 땅을 기증 받은 기념관 설립 예정부지 |
최근 국가보훈처 통계자료에 따르면 건국훈장 애국지사는 4277명이며 유족은 4210명, 건국포장 애국지사는 626명(유족 622명), 대통령표창 애국지사는 1718명(유족 1703명)으로 애국지사의 유족 총 수는 6535명이다.
애국지사는 모두가 한결같이 국가를 위해 몸바친 영웅들이지만 유족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업적이 세상에 알려져 새로운 역사적 사실로 인식되기도 하며, 때론 그 업적이 알려지지 않아 가슴 애태우는 유족들 또한 부지기수다.
박정용 사무처장은 대다수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그렇듯이 어린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면학의 기회를 받질 못해 중학교를 중퇴했다. 그러나 그는 늦깍이로 고입, 고절 검정고시를 통과해 2007년 만 56세의 나이로 영남대 입학, 2011년 2월 22일에 부친에 관한 졸업논문인 '박희광 의사, 조선독립 대한통의부의 특공대원으로서의 투쟁활동'으로 당당히 졸업을 하게되었다.
박 사무처장은 직장 은퇴후 부친의 기념사업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사명감뿐이다. 그래서 대학 또한 정치외교학과(주전공)와 지역 및 복지행정학과(복수전공)을 했는지도.
이러한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박희광 선생의 업적은 구미와 대구지역 사회는 물론이고 서서히 전국적으로 그 업적이 알려져 가고 있고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가 않다.
비단 역사 교과서에 언급된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같은 분들의 업적만이 부각되어 그 이면에 수많은 열혈 독립투사들의 존재가 가려져 있다.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만이 미래가 있으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선현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곳곳에 애국지사들의 기념관이 들어설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만 한다.
말로만 애국을 부르짖고 엉뚱한 곳에서만 애국심을 찾을 것이 아니라 지역이 배출한 독립투사들의 생가터에 기념관을 지어 자연스럽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민족의 영웅들의 기운을 얻을 수 있게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민족정기 선양사업에 앞장 선 지도자들은 후대에 기리 명예로 남는다.
박정용 사무처장은 민족정기 선양사업에 매진한 도지사나 시장은 후대에도 그 업적이 기리 남을 훌륭한 일임을 되새겼고, 그런면에서 김관용 도지사의 민족정기 선양 사업 의지와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한시적으로 눈앞의 이익을 쫓는 행정 업무보다는 우리 민족이 느끼게 될 민족적인 긍지를 드높이는 일이 더욱 필요한 오늘날이다.
박희광 독립운동가의 직계후손이자 아들인 박정용 사무처장은 훌륭한 애국지사를 두었다면 마땅히 선양 사업을 해야 옳지 않겠냐며 기자에게도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었다.
현재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관장으로 계신 김희곤 안동대학교 교수를 찾아가 보기를 권했고, 선양 사업에 관한 일이라면 언제든 자문을 해주실 수 있다며 용기를 불어 넣어줬다.
민족정기 선양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사업주체로서 가능성 있는 사업계획서와 모금계획서를 만드는 것을 비롯해 부지확보와 지방비 확보 그리고 향후 활용도 등이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인 국고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아무나 할 수 가 있는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 열정을 가지고 민족정기 선양사업에 매진해 온 박정용 사무처장과 같은 유족들이 이뤄낸 주옥같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밀양 박씨 경주 부윤공파 문중에서는 "항일독립투사가 계시는 것만으로도 후손으로서 명예로운 일이다"라며 박희광 선생 생가 복원과 기념관 사업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또한 박 사무처장은 시간이 얼만큼 걸리든 꿈은 이루어지지 않겠냐라며 기념관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보였다.
창조경제 시대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 혼을 일깨우는 자긍심의 발로다. 민족정기 선양사업이 바탕이 된 창조경제라면 세계 어떤 무대에서도 더욱 당당할 수 있고 다른 나라들로 부터 더욱 인정 받을 수가 있다.
고귀하고도 훌륭한 민족정기를 기리는 선양사업이 창조문화의 기반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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